25. 05. 20. PM 4:39
체중계 숫자가 내려간 그날, 사실 몸 안에서는 다 끝난 게 아니에요. 살이 빠지면 혈당도, 체지방도 정상 범위로 돌아오는데, 한 곳만 한참 더 천천히 움직여요. 바로 장 안에 사는 미생물들이에요.
장 안에는 사람 세포 수와 비슷한 수준, 그러니까 약 38조 개로 추정되는 미생물이 살아요. 종류는 1,000가지가 넘어요. 이 식구들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가 살이 다시 찌느냐 마느냐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줘요.
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의 한 실험이 이걸 잘 보여줘요. 살이 찐 생쥐를 다이어트시켜서 체중을 정상으로 되돌렸어요. 겉으로 보기엔 다 회복된 상태죠. 그런데 장 안 미생물 구성을 들여다보니, 살찐 시절 그대로였어요. 그 상태가 6개월쯤 이어졌고, 그동안 고칼로리 음식이 다시 들어오면 평소보다 살이 더 잘 쪘어요.
연구진은 이걸 "장의 기억"이라고 불러요. 몸은 다이어트가 끝났다고 보는데, 장 안 식구들은 아직 살찐 시절을 살고 있는 셈이에요.

물론 이건 생쥐 실험이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은 아니에요. 다만 "다이어트 직후가 가장 살찌기 쉬운 시기"라는 경험을 설명해줄 가능성 하나가 보이는 거예요.
다행히 장 안 식구는 우리가 매일 먹는 걸로 천천히 바뀌어요. 가장 잘 알려진 지렛대는 섬유질이에요.
영국에서 쌍둥이 1,600여 명을 장기 추적한 연구를 보면, 섬유질을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장 안 미생물 다양성이 높았어요. 그리고 다양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시간이 지나도 체중이 덜 늘었어요. 반대로 초가공식품 위주로 먹는 사람은 다양성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어요.

스탠퍼드대에서 한 다른 실험에서는, 김치·요거트 같은 발효 음식을 10주 동안 자주 먹은 사람들의 장 안 다양성이 늘었다고 해요. 우리 식탁에 이미 있는 음식이라 시작하기도 어렵지 않아요.
"제로" 음료의 인공감미료는 사람마다 반응이 달라요. 2014년 Nature 에 실린 연구에서는 사카린이나 수크랄로스 같은 일부 인공감미료가 장 안 미생물 구성을 바꿔서 혈당 반응이 흐트러진 사람이 있었어요.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로 일어나진 않지만, 매일 습관처럼 마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줄여볼 만해요.
술과 담배도 장 안 다양성을 떨어뜨려요. 특히 흡연은 알코올보다 영향이 더 크다는 연구가 있어요. 끊기 어렵다면 빈도부터 줄여보는 것도 한 걸음이에요.
원문에서 자주 권하는 게 "항생제 끝나면 프로바이오틱스 챙기세요"인데, 최근 연구는 좀 더 조심스러워요. 균주마다 결과가 달라서, 회복을 돕는 균주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늦추는 균주도 보고됐어요. 그래서 "프로바이오틱스 = 정답"이라기보다는, 복용 전에 약사나 의사와 상의해서 본인 상황에 맞는 균주를 고르는 게 더 안전해요.
장 안 식구를 한 번에 바꾸려고 하면 지쳐요. 한 끼만, 한 가지만 바꿔보는 게 시작이에요.

오늘 점심에 색깔 하나만 더해보거나, 밥에 잡곡을 한 숟갈 섞어보세요. 한 번이 아니라 며칠 이어지면 장 안 식구들이 천천히 자리를 바꾸기 시작해요.
다이어트가 끝나도 장이 기억한다는 말은, 살이 다시 찐다는 협박이 아니에요. 거꾸로 보면, 매일 한 끼의 선택이 장 안에 천천히 새로 기억된다는 뜻이기도 해요.